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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글렌 한사드 별세, 아일랜드가 기억하는 건 노래만이 아니에요

어제 아침 타임라인에 ’Falling Slowly’가 줄지어 올라왔어요. 영화 ’원스’의 그 남자, 글렌 한사드(국내 표기는 ’핸사드’도 써요)가 더블린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쉰여섯.

국내 기사는 하루 만에 쉰 편 넘게 쏟아졌는데 대부분 같은 자리에 서 있어요. ‘원스 주인공, 오스카 수상자, 사망’. 그런데 현지 보도를 따라가 보면 아일랜드가 붙잡고 있는 이름은 좀 달라요. 확정된 사실과 아직 아닌 것을 먼저 갈라 두고 국내 기사에 거의 안 실린 다른 얼굴을 뒤에 붙일게요.

이미지: AI 생성(ChatGPT)

지금 확정된 사실은 어디까지인가요?

시간과 장소, 그리고 사망 사실까지입니다. 아일랜드 경찰 가르다와 소속사 발표를 합치면 사고는 현지시간 7월 29일 새벽에 났어요. 오전 4시 30분이 되기 직전, 더블린 루칸의 스트로베리 베즈였어요. 현장에서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얼마 뒤 사망 판정을 받았어요. 소속사 ATC는 “비통한 마음으로 글렌 한사드가 오늘 새벽 세상을 떠났음을 알린다”며 가족과 동료의 사생활을 지켜 달라고 요청했어요.

여기서 하나 바로잡을게요. 국내 여러 매체가 사고일을 ’28일(현지시간)’로, 사고 유형을 ’추돌’로 적었어요. 아이리시타임스는 수요일, 그러니까 7월 29일로 보도했고 가르다 발표문의 표현은 ’단독 사고(single-vehicle)’예요. 다른 도로 이용자가 없었다는 뜻이라서 ’추돌’로 읽으면 장면을 정반대로 그리게 되거든요.

원인은 아직 조사 중

아직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단독 사고라 형사 수사로는 가지 않아요. 그래도 가르다가 원인을 규명해 검시관 심리에 넘길 자료를 만들고 있고요. 독성 검사를 포함한 부검도 하기로 했어요. 소속사도 조사가 이어지는 만큼 추측성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어요.

부고에서 제일 빨리 소비되는 칸이 ’어떻게 죽었나’인데 이번엔 아직 안 채워졌어요. 채워질 때까지는 비워 둬야 한다고 봐요.

한국이 기억하는 얼굴 — ’원스’와 세 번의 내한

2007년 저예산 음악영화 ’원스’는 한국에서 유난히 오래 살아남았죠. 한사드가 마르케타 이르글로바와 부른 ’Falling Slowly’는 2008년 제80회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어요.

영화로 끝나지 않은 인연이 컸어요. 두 사람이 꾸린 듀오 스웰 시즌은 2009년과 2010년, 2015년 한국 무대에 올랐어요. 2015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아예 객석까지 걸어 내려와 관객 얼굴을 하나씩 보며 노래했죠. 그날 기타 줄 하나가 끊어졌는데 그대로 밀고 갔어요. 한사드는 “한국에 올 때마다 항상 행복하고 즐거웠다”며 팬들에게 “보고싶었다”고 했고요. 지난해에는 스웰 시즌이 16년 만의 새 앨범 ’Forward’를 내고 다시 함께 무대에 섰어요.

아일랜드가 기억하는 얼굴, 크리스마스이브의 그래프턴 스트리트

국내 기사는 이 자리를 거의 안 실었어요. 크리스마스이브 버스킹은 2010년 더블린 그래프턴 스트리트에서 즉흥으로 시작했어요. 한사드는 그걸 15년간 이어갔고요. 보노와 시네이드 오코너, 데미언 라이스 같은 이름들이 해마다 그 거리에 합류했고 마지막엔 거의 늘 포그스의 ’Fairytale of New York’을 함께 불렀다고 해요. 모인 돈은 노숙인 지원 단체 더블린 사이먼 커뮤니티로 갔어요. 누적 200만 유로가 넘어요.

아이리시타임스에 따르면 한사드는 열다섯에 이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고 열일곱엔 친구들과 쉼터를 세우려 했어요. 알코올 의존을 앓던 고모가 크리스마스에 버밍엄의 공원 벤치에서 노숙 상태로 숨진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2016년 크리스마스 직전에는 더블린 도심의 빈 사무실 건물 아폴로 하우스를 백여 명과 함께 점거해 거리의 사람들에게 잠자리를 내주기도 했고요.

보노는 한사드를 “발리먼의 가장 음악적이고 짓궂은 대천사”라 부르며 거리에서 자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던 사람이었다고 적었어요.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언제나 긍정적이고 웃고 있고 노래할 준비가 돼 있었다고 회고했어요. 미할 마틴 총리와 캐서린 코널리 대통령, 마이클 D 히긴스 전 대통령까지 나서 애도를 전했습니다. 밥 겔도프와 에드 시런, 호지어도 말을 보탰습니다. 더블린 사이먼 커뮤니티는 재능만큼이나 사회 정의를 향한 한사드의 태도가 유산으로 남을 거라고 했고요.

열다섯부터 쉰여섯까지

오스카 트로피는 이력에서 가장 화려한 줄이지만 아일랜드 사람들이 붙잡는 줄은 따로 있어요. 열다섯에 노숙인 단체 문을 두드린 사람이 쉰여섯에 떠날 때까지 같은 거리에 계속 서 있었어요. 유명해진 뒤에도 그 자리를 안 옮겼다는 것.

저는 이번 부고에서 그 대목이 제일 오래 남았습니다. 잘 만든 노래는 만든 사람을 오래 살게 하죠. 올해 크리스마스이브에도 그래프턴 스트리트에는 사람이 모일 테고 그때 부를 노래는 한사드가 이미 다 만들어 두고 갔어요.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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