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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스페인 산불 30만 명 대피 — 바뀐 건 '불'이 아니라 '불이 붙는 조건'이에요

유럽에서 산불 소식이 며칠째 올라오고 있어요.

30만 명이 대피했다는데 숫자가 너무 커서 오히려 실감이 안 납니다. 저는 이 뉴스가 ’어디서 큰 불이 났대’로 소비되고 지나가는 게 좀 아깝게 느껴졌어요.

이번 일에서 진짜로 달라진 건 불의 크기가 아니라 불이 붙는 조건이거든요.

7월 27일 기준으로 확인된 숫자와 아직 갈리는 것을 나눠 정리하고 그 ’조건’이 무슨 뜻인지까지 가 볼게요.

지금 유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요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30만 명 넘는 사람이 집을 떠났어요.

가장 큰 불은 프랑스 남서부 지롱드에서 났어요.

이 불 하나로만 22만 명이 대피했고 탄 면적이 4만 2천 헥타르예요. 불길은 보르도 도심에서 15km 앞까지 왔고요.

프랑스는 지롱드 한 곳에 소방관 2,500명 넘게, 군 병력 1,500명, 경찰 1,200명을 넣었습니다.

그런데도 소방관 80명 넘게 다쳤어요.

스페인은 마드리드와 아빌라 일대 불로 사상 처음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어요. 마드리드 쪽에서 약 1만 헥타르, 옆 아빌라주에서 1만 3천~1만 5천 헥타르가 탔어요.

발렌시아 외곽 마니세스에서는 차 안에서 숨진 사람이 발견됐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하나 있어요. 프랑스가 EU에 공식으로 지원을 요청했거든요.

그 요청을 받고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포르투갈, 체코, 슬로바키아에서 소방 항공기와 진화 인력이 넘어왔어요.

프랑스는 소방 장비와 훈련 수준이 높은 나라로 꼽혀요.

그런 나라가 이웃 다섯 곳의 손을 빌렸다는 사실이 통계보다 이번 불의 성격을 잘 말해 주는 것 같아요.

4만 2천 헥타르가 잘 안 와닿는다면

헥타르는 평소에 쓸 일이 없는 단위라 감이 안 잡히죠.

4만 2천 헥타르는 420제곱킬로미터예요. 서울 전체 면적의 0.7배쯤 됩니다.

여의도로 치면 145개고요.

산불 하나가 서울의 3분의 2를 태웠다고 옮기면 좀 다르게 들리실 거예요.

프랑스가 올해 잃은 숲을 다 합치면 11만 5천 헥타르, 서울의 약 1.9배입니다.

숫자를 이렇게 바꿔 적다가 손이 좀 멈췄어요.

대피한 22만 명은 대전 인구의 6분의 1쯤 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 사람들이 며칠 사이에 집을 비우고 나왔어요.

뉴스에서 ’22만 명 대피’는 한 줄이지만 그 한 줄 안에 22만 개의 저녁이 들어 있어요.

왜 올해 이렇게 커졌을까요

여기서 정직하게 인정하고 갈 게 하나 있어요.

남유럽 산불은 매년 나는 일이에요.

그러니까 “원래 여름마다 타는 데 아니냐”는 반응도 틀린 말이 아니에요.

다만 올해는 몇 가지가 확실히 다릅니다.

프랑스 산불 지역의 7월 평균 최고기온이 32.2도였는데 1961~1990년 7월 평균보다 7.3도 높은 값이에요.

30년 평균에서 7도가 움직이는 건 기후에서 작은 숫자가 아니에요.

더 인상적이었던 건 불이 움직인 방식이었어요.

주말 사이 지롱드에서 ’화재 뇌우’가 생겼어요. 불이 스스로 만든 열기로 구름을 만들고 그 구름이 다시 바람을 만드는 현상이에요.

이때 불티가 1km를 건너뛰면서 멀리 떨어진 곳에 새 불을 여러 개 만들었습니다.

로랑 뉘녜스 프랑스 내무장관은 하루에 30~40건씩 새 불이 붙고 있다고 했어요.

소방은 보통 불의 가장자리를 따라가며 잡아요.

그런데 가장자리가 1km씩 순간이동을 하면 따라갈 선 자체가 사라지죠.

당국이 이 불을 두고 “전례 없다”고 표현한 건 이 대목 때문이었어요. 크기 때문이 아니고요.

그래서 저는 이번 뉴스의 핵심이 면적이 아니라고 봅니다.

같은 불씨가 예전 같으면 한 자리에서 꺼졌을 텐데 지금은 땅이 마르고 기온이 높아서 붙자마자 커져요.

바뀐 건 불이 아니에요. 불을 받아 주는 조건이죠.

확정된 것과 아직 아닌 것

이런 글일수록 아직 안 정해진 걸 안 정해졌다고 쓰는 게 중요해요.

확정된 것 — 대피 규모, 7월 27일 기준 소실 면적, 스페인의 첫 국가비상사태 선포, 부상 소방관 규모입니다.

아직 아닌 것 — 먼저 불이 안 꺼졌어요.

7월 27일 당국 발표는 지롱드 화재가 ’안정화’됐다는 것이었어요. 이건 불길이 더 넓어지지 않았다는 뜻이지 진화됐다는 뜻이 아닙니다.

“역대 최대 산불”이라는 표현도 아직은 전망이에요.

프랑스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1949년 랑드 화재는 5만 헥타르를 태웠고 82명이 숨졌습니다.

이번 지롱드 불은 4만 2천 헥타르라 그 기록을 아직 넘지 않았어요.

기사 제목이 ’역대 최대’로 나가더라도 지금은 근접한 상태라고 읽는 게 맞아요.

발화 원인도 조사 중이에요.

전력망 사업자의 벌목 작업 현장에서 시작된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는데 그 작업 자체는 당시 규정을 지킨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 대목은 사실 제 한 문장에 불리한 자료예요. 기후만으로 설명되는 불이 아니라 사람의 작업에서 시작된 불이니까요.

그래도 저는 판단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불씨는 늘 있었어요. 담뱃불이든 전선이든 벌목 작업이든요.

그 불씨가 떨어졌을 때 땅이 어떤 상태냐가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뭘 하면 될까요

여름에 유럽 여행 일정이 있다면 항공편보다 먼저 볼 게 있어요. 가려는 지역의 대피·통제 상황입니다.

프랑스는 지역 행정기관인 프레펙튀르가, 스페인은 주 정부가 통제 구역을 실시간으로 공지해요.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사이트에 지역별 공지가 올라오니 출발 전에 한 번 보시면 좋고요.

여행자 보험의 자연재해 조항도 미리 읽어 두시면 도움이 됩니다.

산불로 인한 일정 취소가 보상 대상인지는 상품마다 갈리거든요.

항공편이 뜨는데 숙소 지역만 통제되는 경우가 실제로 생겨요. 이때 보상 범위가 제일 애매해지고요.

그리고 한국에 있는 우리 쪽 이야기도 하나 하고 싶어요.

이번 여름 국내에서도 전기요금냉방비 지원이 계속 화제였습니다.

그때 우리가 다룬 건 ’요금을 어떻게 아낄까’였어요.

유럽 뉴스를 보고 나니 그 질문이 조금 다르게 보여요.

전기요금이 오르는 것도, 남의 나라 숲이 타는 것도, 결국 같은 여름의 다른 얼굴이거든요. 한쪽은 고지서로 오고 한쪽은 대피 문자로 올 뿐이에요.

기후 얘기는 늘 멀고 큰 말로 와서 실감이 잘 안 났는데 이번엔 처음으로 가까이 느껴졌습니다.

마무리

지금도 지롱드에서는 2,500명 넘는 소방관이 불의 가장자리를 따라 방화선을 만들고 있어요.

스페인은 이번 주 40도를 넘는 더위가 다시 온다고 합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죠.

집을 비우고 나온 30만 명이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밤새 불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더는 다치지 않기를 바라고요.

먼 나라 일이지만 같은 여름을 지나는 중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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